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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마을 산책기 : 관광지보다 좋았던 동네 이야기

by 하_루 2025. 5. 9.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 길 위에 있다.”
이 말을 처음 실감했던 건, 제주에 살며 마을을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제주도는 유명 관광지보다, 아무 정보 없이 걷게 된 골목 하나가 더 큰 울림을 주는 섬입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그저 돌담 너머 바람소리, 정겨운 마을 방앗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돌길 하나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오늘은 수많은 관광지 대신, 제 마음속 ‘진짜 제주’로 남은 마을 산책기를 공유할게요. 제주에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조용하고 감성적인 마을 이야기입니다.

제주마을 산책기 : 관광지보다 좋았던 동네 이야기
제주마을 산책기 : 관광지보다 좋았던 동네 이야기

구좌읍 월정리 – 바다보다 바람이 기억나는 마을

 

월정리는 이제 꽤 유명한 동네가 되었지만, 아직도 ‘바다 앞 카페’ 대신 마을 안쪽 골목을 걷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진짜 매력은, 바다가 아닌 골목 안의 정적과 바람소리에 있어요.

돌담은 낮고, 길은 넓지도 않지만 정겹고 조용해요. 길가에 핀 야생화 사이로 고양이가 느긋하게 지나가고, 어떤 집은 감귤을 널어 말리고 있기도 하죠.

월정리 초등학교 근처로 가면, 바다 소리는 멀어지고 대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요.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다 보면, 어디론가 목적 없이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끔, 마을 어르신이 먼저 인사를 건네오기도 해요. 그 짧은 인사 한 마디가 여행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랄까요.

 

한경면 저지리 – 예술이 숨 쉬는 고요한 마을

 

처음 저지리를 방문했을 때, ‘이 마을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도 거의 없고, 사람도 많지 않고, 상점도 눈에 띄지 않지만… 그 고요함이 어느 순간,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죠.

저지리는 제주 예술인 마을로도 알려져 있어요. 곳곳에 아기자기한 갤러리, 공방, 그리고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들이 숨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마을을 걷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

마을 뒤편의 저지오름으로 올라가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작은 집들 사이사이로 나무와 바람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요.

산책 후엔, 현지 작가가 내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조용히 앉아있는 것도 이 마을만의 여유입니다.

저지리는 누구에게 크게 소리치지 않아요. 그저 조용히 다가와서, “괜찮아, 이렇게 쉬어가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곳입니다.

 

조천읍 북촌리 – 해녀의 시간이 흐르는 동네

 

북촌리는 관광객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그러나 해안도로 드라이브 중엔 꼭 한 번 들르게 되는 마을이에요.

제가 이 마을을 걷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북촌포구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마을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동네 골목 안으로 들어와 있었죠.

이 마을의 매력은 해녀의 삶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에요. 낮 시간대에는 마을 공터에 해녀들이 옷을 말리는 장면, 그물 손질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어요.

길가엔 물질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조그만 식당에서는 오늘 아침에 잡은 소라나 문어로 만든 국을 내주기도 합니다.

이곳의 바다는 시끄럽지 않고, 잔잔하게 숨을 쉬는 것 같아요.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번잡함 없이, 오히려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그 일상 안에 내가 살짝 스며든 느낌이랄까요. 오래 머물지 않아도, 마음은 오래 남는 동네였어요.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 전통의 시간을 걷는 길

 

성읍마을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정말 조용하고 ‘살아 있는’ 제주 전통 마을을 만날 수 있어요.

돌담길, 초가지붕, 장독대, 마당에서 마늘을 손질하는 어르신들… 마치 시간이 50년쯤 멈춰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관광지처럼 정비된 메인 거리 말고, 골목 안쪽으로 걸어가 보세요. 거기엔 진짜 마을의 리듬이 있어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고, 닭이 마당을 서성이고, 정자 밑엔 마을 어르신들이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죠.

조금 더 걷다 보면 감귤 창고를 개조한 찻집도 있고, 고즈넉한 돌담 사이로 피어 있는 동백꽃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 마을에서의 산책은, 시간을 걷는 여행이에요. 한걸음 한걸음이 제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제주 마을 산책의 진짜 의미
제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섬입니다. 하지만 그 속살은, 천천히 다가갈 때 비로소 보여요.

관광지는 빠르게 보고 지나가는 곳이라면, 마을은 느리게 스며드는 공간이에요. 거기엔 특별한 명소가 없어도, 바람이 있고, 사람의 온기가 있고,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있습니다.

제주 마을 산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속도를 천천히 되돌려주는 것이에요. 바쁘게만 살아왔던 일상에서 벗어나,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걷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여행자’가 아닌 ‘머무는 사람’이 됩니다.

다음 제주 여행에서는 큰 관광지보다, 지도엔 나오지 않는 마을 이름을 한 번 검색해보세요.
그리고 그 마을을 천천히 걸어보세요.
어쩌면 당신만의 ‘제주 이야기’가 그 길 위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